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나라 사랑 정신을 널리 일리고
이를 되새기기 위해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충무공이 성장하여
무과급제할 때까지 살던 곳으로,
순국한지 108년이 지난 숙종32년(1706년)
충무공의 얼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웠고
1707년 숙종이 친히 현충사란 휘호를 내렸다.
온양온천 역에서 4km 떨어진
염치읍 방화산 기슭에 위치한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얼을 기리는 사당으로 숙종 32년
(1706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이듬해 숙종이 친히
현충사란 이름을 내렸다.
1932년 일제 때에
이충무공 유적보존회가
결성되어 사당을 다시 지은 후
1966년부터 1974년까지
정부에서 성역(547,297㎡)을
크게 확장하고 성역화하여
온 국민의 성지로 다듬었다.
기념관은 독특한 구조물로
잔디를 입힌 언덕 모양의
두 건물 속에 흙벽을 입혀
건물이 안겨있는
형상을 가지고 있다.
전시관은 지상1층,
지하1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전시실인 해전실은
임진왜란때 조선수군의 승리를
조명하는 전시실이며,
2전시실은 충무공실로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생애와
후대의 추모를 다룬 전시실이며,
기획전시실은 이순신장군과
임진왜란에 관련된 특정 주제로
기획전이 이루어지는 전시실이다.
교육관은
최대 70석 가량의 강당 시설로
충무공이순신기념관에서 개발한
각종 교육프로그램이 열리는 곳이다.
3D영상과 체험의자를 결합한
4D 체험 영상실도 있다.
정려는 충신이나 효자, 열녀에게
임금이 편액을 하사하여
그들이 살던 마을 입구에
세워두던 건물로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사표로 삼아 그 정신을
고취하고 본받도록 하는 것이다.
현충사 정려에는
이충무공 장군과 그의 조카 이완,
사대손 이홍무, 오대손 이봉상 등
네 명의 충신과 팔대손 이제빈의
효자 편액이 걸려있다.
원래 정려는 동남향으로
정위치에 있었으나
현충사 성역화시
참배객들의 편의를 위하여
서향으로 방향을 바꾸어
해체·복원하였다.
정려 옆으로는
1970년대 현충사 성역화시
조성된 궁궐의 연못을
본 뜬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연못이 있다.
연못 한가운데
조그만 섬을
조성해 놓았다.
보통 궁궐의 연못이
이러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고택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살던 옛집.
이순신 장군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부터 살던 집으로
종손이 대대로 살았으며
일부는 개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집 뒷편에는 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가묘가 있어
매년 기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활터는 옛집 옆에 자리잡고 있으며
수령이 수백년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있는 곳으로
이순신 장군이 활을
쏘던 자리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활터를 둘러싼
방화산의 능선은 이순신 장군께서
말을 타고 달리던 치마장이 있어
충무공의 기개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